
“한국에 주택연금이 처음 도입될 때, 모두가 미쳤다고 했죠”
“집을 담보로 연금을 받는다고 하니, 다들 말도 안 된다고 했습니다.”
대한은퇴자협회(KARP) 주명룡 회장은 2007년 7월 1일, 대한민국 최초의 ‘주택연금 제도’가 시행되던 순간을 이렇게 회상했다.
2003년부터 미국의 주택연금 제도를 한국에 도입하기 위해 뛰어다녔던 그는 “이종운 의원을 통해 재정경제부에 기획안을 제출했지만, 담당 사무관 인사이동으로 허공에 뜨고 말았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3년 뒤, 주택금융공사 이사들이 직접 회장을 찾아와 미국 제도 자문을 요청했다.
“90분 정도 설명을 했더니, 이틀 만에 미국 방문을 주선해 달라더군요. 연말이라 시기상 안 좋았지만, 결국 워싱턴의 연방정부 담당자와 연결시켜 줬죠.”
처음엔 ‘집을 담보로 연금을 받는다’는 개념이 국민들에게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협회 회의에서도 “집은 자식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러자 주 회장은 정부와 방송을 설득해 3대 방송국이 3개월간 홍보를 진행하도록 했다. 그렇게 시작된 주택연금 제도는 17년이 지난 지금, “노후의 마지막 안전망”이 되었다.
“첫날부터 해프닝이 있었죠. 한 시아버지가 주택연금에 가입했는데, 며느리가 와서 ‘집 주기로 했는데 왜 담보로 잡느냐’며 취소해 달라던 기억이 납니다.”
그는 웃으며 “지금은 평생 연금을 받는 게 당연한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연령차별금지법, 7년 반 싸워 얻은 결실”
2002년 1월, 주 회장은 미국 은퇴자협회(AARP) 회장 테스 캔자(Tess Canja)를 초청해 한국의 복지 현실을 함께 둘러봤다.
그는 당시 미국 회장에게서 “늙은 개는 훈련으로도 바뀌지 않는다. 한국의 나이차별 문제를 제도적으로 해결하라”는 조언을 들었다.
그 말에 결심한 주 회장은 ‘연령차별금지 캠페인’을 시작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권고안을 냈지만 ‘나이 차별이 왜 차별입니까?’라며 반려됐어요. 그래서 토요일마다 청와대 앞 1인 시위를 이어갔죠.”
7년 반의 투쟁 끝에 2009년 3월 19일, ‘고용상 연령차별금지법’이 제정됐다.
그는 “이제 50세가 넘어도 공무원 시험을 볼 수 있고, 기업 공고에서 ‘몇 년생 제한’이 사라졌다”며 “가장 보람된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협회는 KBS 라디오에 23년째 고정출연 중이며, 관련 방송만 500회가 넘는다.
사진: [제3회 세계시니어시티즌데이]에서 레전드 주명룡회장
“나보다 나은 사람이 KARP를 이끌면 그게 제 성공입니다”
뉴욕한인회장을 역임했던 그는 2001년 귀국 후, 은퇴자 권익운동에 인생을 걸었다.
2002년 1월 15일, 프레스센터에서 대한은퇴자협회를 공식 출범시켰고, 지금까지 8만 시간 이상을 무보수로 헌신해왔다.
“4년 만에 가진 돈을 다 썼어요. 지금의 광장동 사무실로 옮긴 후부터는 스스로 수익사업을 병행해 단체를 지켜왔죠.”
그는 “가장 큰 성공은 나보다 나은 후배가 이 단체를 이어가는 것”이라며 “이제는 내 싸움이 아니라 세대의 싸움”이라고 했다.
“억울한 일도 많았지만… 그래도 웃습니다”
그는 한때 한화 김승연 회장의 석방 탄원운동을 주도해 오해를 받기도 했다.
“한화가 중동에 50만 채를 짓는다고 했을 때,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서 사회적 차원의 탄원운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몇십억을 받았다는 소문이 돌더군요. 너무 억울했죠.”
결국 김승연 회장은 집행유예로 석방됐지만, 주 회장은 “좋은 뜻으로 한 일이 왜곡된 게 가장 마음 아프다”고 털어놨다.
“이제는 장년층의 소득절벽을 막아야 합니다”
그는 최근엔 ‘장년수당 신설’을 제안하고 있다.
“퇴직 다음날부터 소득이 끊기는 현실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연금 공백기를 막기 위해 장년수당을 도입해야 합니다.”
실제로 그는 민주당과 정부기관에 관련 질의서를 공식 발송했다.
“이제는 노후가 아니라 ‘은퇴 후 첫날’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복지의 시작입니다.”
*주명룡 회장 약력 요약
前 뉴욕한인회 회장
대한은퇴자협회 창립(2002년)
주택연금 제도 도입 자문 (2003~2007년)
‘고용상 연령차별금지법’ 제정 주도 (2009년)
UN 경제사회이사회(ECOSOC) 특별자문 NGO 승인 단체 대표
KBS3 라디오 23년 고정출연
인터뷰어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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